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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본문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내고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것, 창의.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상당한 성과를 내는 이도 적지 않다. 이런 마당에 나까지 참여해야할까 망설이게 되는 순간도 많지만, 오늘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이런저런 자료들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새로운 의견을 낸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문물을 본다는 것인데, 해아래 새로운 것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견문이 좁아서 혹은 짧아서 남이 이미 오래전에 다 해놓은 것을 모른채 열심히 삽질하다가 어느날, 그 주제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바를 접하게되었던 그 순간... 잊히지 않는 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선학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내가 짠 프레임에 맞춰 그동안 찾은 몇개의 자료들을 잘 엮어 겨우 논문을 마무리했었다.
이후, 연구성과 검토를 더 철저히 하게 되었고, 아주 오래전이든 짧은 글이든 막론하고 연구성과로 반영하여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게된 계기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연구자로서 갖춰야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배양하게된 긍정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면에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보기도 했다. 오래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초학자가 쓰거나, 그 글을 쓰고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 자의 성과가 간과되거나 표절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학분야를 연구함에 있어서 문헌과 문물이 기본사료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 사료를 새롭게 보려면 이와 관련하여 뭔가 새로운 자료들이 드러나야 한다. 연관된 무엇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발견되거나 혹은 인지된다면 새롭게 볼 근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할 동기자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문물의 주요 요소가 해석되지 못했을 경우는 늘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일까, 문물에 대한 논문은 자칫하면 보고서가 될 우려가 있다. 사실의 나열만 할 경우가 그러하다. 논문이 되려면 문제를 제기하고 가설을 세워 자료를 제시하며 입증해야 한다. 이때 내세우는 가설이 창의적일때 참신하게 받아들여지며 논문으로서 학계에 수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논문으로 발표하였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자주 인용되어야 학설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학설로 인용되지 않더라도 인구에 회자되기만 해도 논문 쓴 수고로움이 상쇄될 것 같다.
연전에 사찰후원 관련 글을 쓰면서 19세기 전반 안동김씨의 좌장이었던 김좌근의 애첩 나주양씨 이른바 나합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바가 어떤 기사에 인용된 적이 있다. 기생출신으로 당대 세도가의 애첩이던 나합의 생애는 알 수 없지만, 불교를 후원하는 것을 넘어 불자가 되었던 그녀의 삶을, 짧은 기록들을 찾아 정리하였던 그때의 수고로움이 그 기사로 한순간에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논문을 써서 학계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기쁨이 크지만 그에 못지 않게 대중에 수용되는 것도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이었다.
이후, 사람에 주목하게 되었다. 문물을 만든 사람, 누린 사람, 돈 댄 사람...
문물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만든 이유가 있고, 만든 이가 있고 주문한 사람이 있고, 그것을 즐긴 사람이 있다. 이들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분야에서 가능하다. 건축미술사적으로도 사회사적으로도 말이다.
미학적으로 그것이 아름다운가 아닌가는 전문적인 문제이다. 또 개인의 취향문제일 수도 있다. 문물에는 시대와 사회가 반영되어 있다. 건축의 경우, 한 시대의 정서와 생활습관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건축을 알려면 그 시대의 사회와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다. 미술은 건축에 비하면 보다 더 취향저격이라 하겠다.
매일매일 창의적이려고 노력한다. 새롭게 보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새롭게 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 궁리한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그렇겠지? 오늘은 어제보다 얼마나 새로워 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