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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여성, 문밖을나서다-일하는 여성들-

헷빛 2023. 5. 5. 17:04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에 한양이라는 단어가 있어,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 조명되는 전시겠구나 했다.
   여성들의 활동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하던 조선시대, 그들의 활동공간으로 한양을 주목하였다는 점이 전시장으로 향하게 했다.  한양도성 안 여성들의 공간을 신분에 따라 나눌것인가, 신분 구분 없이 모이는 곳으로 볼 것인가.. 궁금했다.   
 
  연휴시작날 오전이어서인지, 세찬 비가 내려서인지,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온 단체 관광객이 막 전시장을 나선터여서인지... 전시장은 한산했다.  
 
들어서자마자 가마가 보였다. 신분 높은 여인이 가마 타고 다녔음을 언급한 왕조실록을 전시벽면에 붙여놓아, 지체 높은 여인이 되어 조선시대로 타임슬리프 하라는 건가....    
   전시 공간은 크게 3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규방, 도성안, 도성밖.
규방에서는 상류층 여인의 삶을 경수연도, 삼강행실도, 첩지 등으로 보여주고, 도성안에서는 의녀, 궁녀, 왕비의 삶을 관련 도서와 직첩구성, 밥상모형 등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시전(시장)에 형성되어 있던 상점 중 여성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족두리, 침낭, 화장품, 빗, 비녀 가게 등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도성밖 공간에서는 사찰의 여승(비구니)과 무녀들의 삶을 보여주려 했으나.. 양반이나 상궁에 미치지는 못했다. 자료가 없으니까 그런가 보다 이해하지만 좀 아쉽다. 기록을 좀 더 살폈으면 발견되는 바가 있을텐데 하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공간으로 풀어내는 전시라는 점에서 주제와 제목이 흥미로웠다.   상궁들의 직제와 역할, 근무 공간 등을 표로 정리한 것은 조선시대 여성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상궁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가장 흥미를 유발한 것은 밥상이었다.
 
    "와, 밥그릇좀 봐, 저렇게 많이 먹었구나"    "반찬 양이 많고 다양하네"    "육해공을 다 먹었어"
 
  혜경궁홍씨가 아들인 정조대왕과 함께 남편 사도세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행차때, 아침상을 재현 한 것을 두고 관람객들이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말대로 한 사람이 저 많은 양을 다 먹었다면, 과식이 틀림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음식관련 기록을 보면, 웃전에서 상을 물리면(식사를 마치면) 아랫사람들이 그 밥상을 받아 먹었다고 한다. 웃전이 다 먹어버리면 먹을게 없게 된다. 그래서 웃전은 밥과 반찬을 남기는게 불문률(요즘으론 국룰?)이었던 것이다. 
   가장 귀에 꽂힌 말은 이거다.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는데, 산해진미를 매끼니 먹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았겠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겠다. 이 시대 한양에서 일하며 사는 여성의 넋두리인 것을...  맘속으로 동의를 표했다.    

1797년 정조와 화성능행에 나섰던 혜궁홍씨의 아침 수라상 재현
김홍도 추정, 8폭 풍속도 병풍,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이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8폭의 풍속도 병풍의 모사본이다.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진품이 있고 이 전시에는 모사본이 나왔는데,  조선후기 도시 풍속을 이해하기에 좋아, 여기저기에 소개된 그림들이다. 
  이중 오른쪽에서 첫번째 그림과 왼쪽에서 3번째 그림이 유명하다. 
  오른쪽 첫번째 그림은 '난로회'로 알려져 있다. 소복이 눈이 쌓인날, 보름달까지 떠, 어느때 보다 환한 겨울 달밤, 야외에서 2명의 여인과 4명의 남자가 난로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삿자리 위에 버선발인데, 한 남자가 오른손에 젓가락을 든채 신발을 신고서 달려들고 있다. 그림을 들여다보자니 지글지글 잘 익은 고기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여기에 뒤늦게 합석하는 한 남자의 발걸음으로 얼른 입에 한점 넣어야겠다는 식욕이 전달되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남성들은 도포자락 안에 다른 색의 옷이 묘사되어 있어 당시에도 내복을 입었던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두명의 여인은 옷차림과  행동거지로 보건데 기생 같다. 
 그림 속 모든 이들은  젓가락을 들고 있는데 입가에 고기를 넣거나 넣어주거나 입으로 후후부는 모습까지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즘으로 치면 야외 바베큐파티 장면을 실감나게 그린 것인데, 조선후기에 불고기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그림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여기서의 불고기가 요즘 먹는 불고기인가는 논외이다. 
   왼쪽에서 3번째 그림은 청계천 수표교 위에서 사당패들이 모금 공연하는 장면인데, 소고를 치는 두 남자의 자세나 부채를 쥐고 춤과 노래를 하는 기생처럼 보이는 두 여인의 자세가 눈길을 끈다, 특히 오른손에 부채들고 머리에 삿갓을 쓴 여인은 한 남자를 포섭(?)했다. 남자는 이 여인의 손짓에 이끌리듯, 도포자락을 걷어올려 씸지돈을 꺼내고 있다.   볼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종로통과 이어지는 청계천 수표교 다리 위에서 악가무(악기연주, 노래, 춤)가 벌어지는 공연은 구경거리 였을게다, 그래서 머리 하얀 할머니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론 등에 없은 손자를 받치고 구경나왔다.  한양  여성들의 문밖 출입 사유에는 이런 볼거리도 있었던 것이다. 
 
  도성밖 공간을 구성하는 여인으로는 승려와 무당을 살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불경만드는데 시주한 최상궁이 경전의 마지막장에 담은 시주기이다.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불교에 입문하여 성불하게 해주세요" 
 
 남자여야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여성성이 존중은 커녕 억압되던 시대,

드넓은 세상의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시절,
드물게 열리는 문으로 세상을 드나들었던 여성의 삶을 돌아보며 숙연해졌다. 
 
 프랑스에 있는 풍속도8폭 병풍을 모사본으로나마, 유리장 너머로나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볼만한 전시였다.
10월3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