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 무명작가?의 작품들...
이름모르는 작가들의 그림인데 흥미롭다.. 조선민화!
조선후반기, 부를 축적한 이들이 늘면서 세태는 이전보다 집을 꾸미는 일에 관심있었던 것 같다.
이들의 지향은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그렇잖은가, 옌예인 집소개나 드라마 속 상류층 집 꾸밈을 보며, 자기 집 인테리어에 반영하는 거.
사극을보면, 조선시대 상류층 주인공이 앉아 있는 뒷편에 그림이나 글씨가 있는 병풍이 세워져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창문엔 그림이 붙어 있기도 하다.
어린시절, 국민학교4학년 1학기때 까지 개량한옥집 다른 말로 집장사가 대량으로 지은 한옥집에 살았더랬다.안방과 연결된 부엌은 서너단 아래로 내려가기에 그 윗부분은 안방에서 올라가는 다락방이었다. 다락방문에는 문 형태에 어울리게 길이가 긴 그림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쓰시던 건넌방의 두겹 창문 중 실내쪽에 붙은 창에도 작은 그림이 붙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대단한 그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 4칸 규모 마루에서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상 너머 뒷쪽에, 설날 세배할때 부모님 뒤편에 세워두는 병풍에는, 한쪽 면엔 풍속화가 그 반대편에는 글씨가 쓰여진 긴 그림들이 표구되어 있었다.
4학년2학기엔 양옥집으로 이사가면서 아버지가 단원김홍도의 풍속화를 바탕으로 하여 수놓은 그림과 반야심경을 쓴 글씨로 표구된 새 병풍을 주문제작해 오시고선, 기뻐하셨던 기억이 난다. 양옥집으로 이사했지만, 제사때 ,설날 세배때 마다 병풍은 여전히 그 용도로 쓰였다.
우리집에서 이렇게 쓰인 병풍들에 민화가 그려진 작품들을 대거 모아놓은 전시가 지금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전까지 민화라 하면, 흔히 이름없는 이들의 조악하고 거칠며 볼품없고 초라하고 별볼일 없을 것이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 그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민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늘면서, 화려하고 창의적인 나아가 재미있는 그림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 덕분에 민화 전시도 성황이다. 민화를 그리는 이, 연구하는 이,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진지하게 보고 사진찍는다. 뭐 인플루언서도 있고... 여튼 요즘 어느 전시장을 가더라도 예전과 달리 관람객들이 많고 수준도 높아보인다.
민화를, 이름 모르는 작가가 그렸다고 이름없는 화가가 그렸다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왕실에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책가도나 모란도 병풍을 모방하여 제작된 병풍은 민화라며, 서민용이라고 낮춰보기엔 고급스럽고 근사하다. 전북 부안의 책가도는 색부터 기물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명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라 여기지만 실제는 이름이 알려진 사례가 적지 않고, 그 기량 역시 기교가 부족하다거나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한때 민화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다. 생활화니 실용화니 했는데, 이 역시 적당하지 않다. 궁중에 놓였던 모란화나 책가도는 실용화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장식화는 어떤가?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린 이의 신분이 사대부이면 사대부화, 궁중화원이면 화원화, 일반 서민이 그리면 민화인가?
민화라 불리는 작품들을 보면, 작품의 구도나 색, 필치가 전문적인 화원 못지 않은 이들이 그린 것이 많다. 즉 화가가 그린 것이다. 다만 궁중에 소속된 공무원(?)이 아니고, 출신계층 역시 사대부가 아니었기에 이름을 남기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림을 주문하던 이들은 알았을 것이다. 인근에서 아님 그 시대에 그림 꽤나 그린다고 소문난 이에게 주문 제작했을 것이기에..
무명화가들의 그림이 아니면, 뭐가 불러야 적당할까? 지역화가들의 그림, 지역화?
혹자는 민화가 꿈과 사랑을 그렸다고도 한다. 뭐 그것도 염원했겠지만, 많은 그림들이 복을 기원했하고 있다. 오죽하면 壽福 글자를 가득 쓴 병풍이 제작되었을까. 또 아들 많이 낳기를 기원하는 백동자도가 그려졌고, 출세하길 염원하니 평생도가 그려진 것 아닐까. 바라는대로 이뤄지길, 그림을 보며 일상에서 복을 염원하는게 말그대로 생활태도였던 것. 그렇다면 염원화? 바램을 그린 그림?
말로 풀어쓰니 길고 어색해보이지만, 어쨌든 민화라 하기엔 적당치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더.
저런 그림을 주문제작 했다면 잘먹고 잘 사는 이들이었을 것인데, 그림 내용이 백동자도나 평생도 였다면 그들은 양반이거나 적어도 중인층 이상이었을 같다. 더욱이 고동기물이 그려진 책가도를 집에 병풍으로 놓을 정도면 보고듣는 것이 많고 재력도 있는 이였을 테니,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무명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했을까?
절대 네버!!!
화가가 그리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던 시대의 산물이다. 전통시대는 물자가 풍족하지 않았기에, 그림 잘 그리는 이에게 물자를 대주고 돈을 주어, 주문제작 했을 것이다. 현대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를뿐...